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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주요관광지
천연기념물
지정번호 명칭 소재지 지정일자
391 사곳천연비행장 백령면 진촌리 사곶 1997-12-30
392 콩돌해안 백령면 남포2리 1997-12-30
939 감람암 분포지 백령면 진촌1리 1997-12-30
명승
지정번호 명칭 소재지 지정일자
8 백령도 두무진 백령면 연화리 3리 1997-12-30
향토유적
지정번호 명칭 소재지 지정일자
2 진촌리 패총 백령면 진춘1리 0988-12-12
 
심청각
지난 1975년부터 지역주민들이 건립을 추진해온 '심청각'은 각계의 고증을 구하여 고전소설[심청전]의 주무대인 백령도에 1999년 10월 21일 세워지게 되었다.
20년의 고증작업 및 행정적 준비기간과 4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진촌리 산 146-10에 세워진 것이다.
옹진군이 30억에 달하는 사업비를 들여 건립한 2층 (109평)규모의 '심청각'은 전통문화 발굴,계승과'효'사상을 고취시킬 관광지가 되어 주민소득을 증대시킬 전망이다.
아울러 50년 가까이 고향을 떠나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주는 효과도 얻게 된다. '심청각' 처마 밑에는 심청전의 줄거리를 요약해 놓은 삽화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다음은 인천광역시 옹진군에서 수립한 '심청각 건립계획 일지'이다.
심청각 연혁
1975.9.20 [심청전]의 배경무대(인당수,연봉바위,연화리)가 백령도임을 확인함
1976.5.23 ‘백령지역 교육문화발전.연구위원회’발족
1989.6.5 이종구 국방부 장관과 이어령 문화공보구 장관에게 ‘심청제’개최 건의 및 ‘심청각’과 ‘심청관’ 건립건의
1991.10.7 강한영 단장의 인솔로 국립창극단 109명이 백령중.고교 강당에서‘심청제’공연
남원‘춘향각’답사
백령섬 학생,주민 반응조사
국문학자들에게 고증의뢰
1994.4.18 문화체육부 조사과에 지원 요청 및 의뢰
1994.5.9 해병사령부의 지원 요청 및 의뢰
1994.5.9 임경호 도지사에게 건립계획 설명 및 지원요청
1994.12.5 경기도비 10억 지원확정
1995.1 현지답사 및 유사 선진지 견학
1995.2.9 ‘심청각’건립 반대민원(사곶교회 유남표 목사외 8인)
1995.2.16-17 기독교계 대화 및 이해설득 현지출방
심청각 건립 민원촉구(백령면 진촌리 백령면지역발전협의회장 박용운외770명)
1995.4.19 ‘심청각’설계용역계약 설계업체:강남구 청담동 삼성건축사무소 / 계약금액:18.665천원
1995.6.12 주민 설명회 개최
1995.6.15 ‘심청각’건립 군사협의
[심청전] 발상지 고증용역 계약
1995.12.27 ‘심청각’공사착공
새한건설(전북 전주 소재의 문화재시공건설 등록업체)
 
심청각
두무진 선대암은 백령도 북서단 해안에 약 400m 거리에 걸쳐 기암절벽이 발달하여 있는 지대를 지칭한다. 두무진 일대의 지질은 원생대의 상원계에 속하는 세립질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암은 대체로 백색 또는 담회색을 띠고 있다. 규암들은 해식작용에 의하여 해안에 따라 약 30~40m 높이의 절벽 또는 바위기둥을 이루고 있고 해식동굴도 보인다. 해변에는 자갈들이 널려 있는데 일부 규암은 풍화작용에 의하여 그 표면이 약간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선대암 일대는 자연경관이 훌륭할뿐아니라 남한에는 분포되지 않은 원생대 상원계에 속하는 규암으로 학술적인 가치도 매우 크다. 선대암에서 해안선을 딸 남쪽으로 4Km 지점에 이르는 사이에 발달된 해식대. 스택,해식동,바다아치 등은 절경을 이루며 해식대와 스택의 높이는 40m에 달하는 곳도 있어 장관이다. 바다아치는 5개 있으며 가장 큰 것은 높이 10여m 폭5m 정도이다.
1486년에 발간된[동국여지승람]에는 두모포(頭毛浦).1802년에 씌여진 [백령진지]에는 두모(頭毛)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모'자의 뜻은 '털'의 뜻과. 풀의 뜻이 있는데 '선대암 바위들이 풀 같이 솟아있다'거나 '바위에 붙은 해초가 콩나무 뿌리 같이 많다'는 조상들의 생각이 담겨져 있으리라 추정된다. 즉, 바위에 붙은 미역,말,가시리 등이 머리털 같이 붙어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이 포구를 두문진(頭門津)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구전에 의하면 1832년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인 키츨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무진을 통해 상륙하였다고 하며,1816년 기독교 최초의 복음인 한문성경이 영국 해군 함선인 알세스터호와 리라호에 의해서 백령도에 전해졌고 이때 함장 시실흘(리라호 함장)이 상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두무진은 서해안 교통의 요충이였고 백령도 제일의 관문이었으므로 '두문진'이라 호칭했으리라고 추정할수 있다.즉 두무진은 백령도의 북서쪽 꼭대기에 있는 문호란 뜻에서 불려졌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면 두무진은 명승 8호로서 우리나라에 손꼽히는 관광지일뿐 아니라 우리나라최초의 선교자 토마스 선교사가 상육한 성지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그후 러.일 전쟁때 이곳에 일본군의 병참기지가 건설되었는데 지금도 콘크리트 흔적이 남아있다. 그때무터 명칭이 두무진(頭?津)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무진 뱃터에서 유람선을 타고 포구를 빠져 나가자마자 왼편으로 기괴하고 아름다운 바위들이 마치 사열을 받은 듯 늘어서 있는데 선대암,형제바위,코끼리바위,장군바위,촛대바위 등이 그 이름들이다. 유람선을 타고 남쪽해안을 따라 돌면 수억년 동안 바람과 비,운이좋은 날은 코끼리바위를 지날 때 물범이 헤엄치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를 타지 않고 해안자갈길을 따라 선대암이 보이는 능선에 오르면 멀리 장산곶을 향하여 세워진'통일기원비'를 만나게 된다. 다시 오솔길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가면 선대암,형제바위등 두무진의 절경이 모아져 있는 곳을 감상하고 촬영할수 있는 뷰포인트에 이르게 된다.이곳에서 사색을 하거나 낚시를 하면 하루 해를 보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특히 선대암은 조선 광해군 때(1612)이곳으로 귀향온 이대기가 그가 지은 [백령도지]에서 '늙은신의 마지막작품'이라고 극찬햇을 정도로 기이한 경관을 자랑한다. 두무진 입구에는 '반공희생자 위령비'가 있는데 이는 조업중 북한군의 급습으로 피납외어 가다가 그들에게 반항하여 희생된 두무진 어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802년에 간행된[백령진지]에 '백령도의 두무진은 해로의 지름길이요,비대기가 편리하여 해적이 출입하는 문지방 이다'고 적혀 있듯 백령도는 예부터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포구로 해적들이 자기집 드나들 듯 했던곳이다. 그후로는 두무진앞 산등성이에 기와집으로 요망대를 짓고 해적선의 출몰사항을 망 보았다고 한다. 마을 서쪽 해발 143고지에는 일제때 일본군이 주둔하여 망을 보던 요망대가 있으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당시요망대는 일본에서 중국 대력까지 부설된 해저전선의 감시를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에도 동쪽에 있는 163고지와 기타 고봉들에는 해군기지가 설치되어있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두무진은 농토가 없는 작은 산간벽지의 포구로 어업을 전업으로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들어오는 망골재를 낮추고 도로를 넓히면서 두무진의 기암절경을 찾아오는 관광객드링 날로 급증하고 있다.1913년부터 법정리인 연화리에 속해 있다가 현재 30여 가구와 90여명의 주민들이 연화3리로 분리되어 살고 있다.
 
심청각
백령도 동남쪽 진촌리 사곶마을 해변에 위치한 사곶의 사빈은 주로 석영으로 구성된 모래가 펼쳐진 길이 2km,폭0.2km(썰물시)의 천연해수욕장이다.
단단하게 다져진 고운 백사장이므로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달려도 바퀴가 모래에 빠지지 않는다.그런이유로 6.25전쟁때에는 천연비행장과 유엔군 작전 전초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천연비행장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더불어 전세계에 두곳밖에 없다고 한다.
1980년대 초까지 사곶의 사빈은 군사통제구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런까닭에 자연 그대로 모습이 잘 보존되었으며, 출입통제가 해제된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곶 해변에 심은 사방겸 방풍림이 자라서 검푸른 송림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하연 모래위에 붉게 핀 해당화가 그 운치를 더해준다. 또 도꼬마리.좀보리사초,한삼덩굴 등의 군락과 돼지풀,토끼풀,질경이,망초, 쑥,명아주,소리쟁이 등이 자라고 있다.

이곳은 울릉도나 홍도에 못지 않게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빼어난 바다경관을 지닌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동쪽에는 인천-백령도 사이를 운항하는 정기 여객선이 닿는 뱃터,용기포가 있다.백령도의 관문이라 할수 있는 용기포에는 북한 어선이 전시되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이곳이 북과 대치한 서해 최북단 지역임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용기원산 뒤에는 선박들의 길잡이 등대가 자리하고 있고,돌로 솟대같이 쌓은 백령도의 상징탑 2개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곶마을에는 사곶냉면집이 유명한데 순메밀로 냉면을 뽑는 기계가 있으며 육수와 돼지고기 맛이 아주 일품이다.
 
심청각
오금포와 중화동 포구 남쪽해안은 우리나라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보기 힘든 둥근 자갈들이 해안을 덮고 있는데,남쪽으로 1km정도 형성된 이곳이 바로 ‘콩돌해안’이다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불리는데 색상이 백색,회색,갈색,적갈색,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을 이루어 해안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콩처럼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파쇄되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규암으로 이루어진 거친 돌들이 얕은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에 의해 계속적인 왕복 운동을 하면서 마모되어 매끈매끈한 자갈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콩돌자갈은 간조시 육지로부터 조립질 자갈대,세립질 자갈대 및 중립질 자갈대 순으로 해안선에서 평행하게 발달하였다.
조립질 자갈대는 약 6m 내외의 폭을 가지고 있으며 자갈의 작경은 8-64mm 아다.세립질 자갈대는 폭이 8m정도이고 자갈의 직경은 4-19mm 이다. 중립질 자갈대는 폭이 약 1m ,자갈의 직경은 7-40mm 이며 하부층에는 모래층이 있다.
내륙쪽으로는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있으며.백령도 해안순환 도로가 놓여있다. 주변은 농경지이고 식생은 백령도으 다른 지역과 유사하나 길가에는 머위군락,소리쟁이군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민가의 소구릉을 중심으로 오감주 나무가 분포되어있다.
콩돌해안은 북한 함경남도 이원 해안에도 있는데,북한에서는 이를 천연기념물 제 28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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